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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얀마 쿠데타 2년 인터뷰]음악으로 미얀마 민주화 외치는 포산씨, ''잘못된 쿠데타, 끝까지 싸울 것''

김선균 | 2023/02/03 20:59

(태국 메솟=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 =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지 2년째인 1일 미얀마와 태국이 맞닿은 지역인 태국 메솟에서 취재진을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포산(33)씨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긴 머리를 묶어 뒤로 넘긴 그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예술을 하는 사람임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부인과 자녀 2명을 둔 그는 지난해 1월 아이들을 타이어 튜브에 태워 미얀마와 태국 국경 사이를 흐르는 강을 어렵사리 건너와 지금 메솟지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포산(33)씨가 자신이 이끈 지난 2021년 2월 10일 진행된 '바이올린 시위대'의 활동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포산씨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직후였던 지난 2021년 2월 10일 어른, 아이, 부녀자 할 것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수 있었던 이른바 '바이올린 시위'를 기획하고 이끌었습니다.

당시 이 시위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포산씨의 부인도 당시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6살이던 딸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남편의 뒤를 따랐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포산(33)씨가 자신의 감정을 한껏 몰입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바로 그 일은 포산씨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무기로 미얀마 군부와 맞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시위'이후 쿠데타에 반대하는 노래를 자신의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가운데 한 영상의 조회수가 무려 150만뷰를 넘자 화들짝 놀란 미얀마 경찰은 그의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자신에 대해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자 당시 메솟에 먼저 나와있던 친구의 권유로 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머금고 국경을 넘은 포산씨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여러곳을 옮겨다니며 힘겹게 음악을 통해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지난 31일 오후 자신의 임시 작업실에서 취재진을 만난 포산씨는 여느 30대 청년과 다를바 없는 해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환대해줬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포산(33)씨와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이 연주하는 모습.

'미얀마 민주주의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정치도 모르지만 수치여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며 "이번 쿠데타는 분명히 잘못됐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겠다"며 굳은 각오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는 메솟지역에 있는 미얀마 국민들을 위해 "특히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자신의 딸은 메솟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어려운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메솟지역 현지 경찰의 횡포가 심해 가장 힘들고 다음으로는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포산씨는 "미얀마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곳으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며 "제3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을 하는 '전사'인 포산씨에게도 광주는 그리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그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우연히 '광주'와 관련된 영화를 보게됐고 거기서 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돌았다"며 "이후 책을 통해서도 이 노래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해 줄 수 있겠냐고 요청하자 그는 기꺼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악보를 찾아 비장한 모습으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음계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흡사 마치 전장에 나선 용사처럼 비장했습니다.

43년전 군부의 탄압을 받았던 '광주'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낯선 이국 땅에서 울려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이 곡을 연주하면서 40여년전 광주의 상황이나 지금 자신의 나라 미얀마가 처한 상황이 한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 깊이 아팠다는 포산씨.

자신이 바라는 것은 단지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예술가로서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다는 포산씨는 "시위를 할때는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는데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많은 군중들의 '단결'을 더욱 깊게한다고 생각한다"며 "음악을 통해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포산씨를 쏙 빼닮은 모습에 바이올린 연주 실력까지 물려받은 올해 8살난 그의 딸이 자신의 나라에서 아빠와 함께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그런 평화스러운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라며 태양이 메솟을 넘어가던 석양녘에 긴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일행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세살배기 아들까지 온 가족이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던 포산씨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가 오래도록 잔영처럼 남았습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23-01-31 23:04:46     최종수정일 : 2023-02-03 20: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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