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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5·18진실', 대학신문이 알렸다''...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 80년초 대학신문 보도 분석 '눈길'

김선균 | 2022/04/12 20:45

'전대신문'(전남대)에 1981년 5월 7일 8면에 보도된 전남도청 분수대의 모습

◀ANN▶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 = 80년 5·18당시 신군부의 검열로 기성 언론들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특히, 1980년 5월 이후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은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대변하기 보다는 조작과 왜곡으로 일관된 신군부의 발표를 마치 진실인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기성언론들이 신군부의 검열과 탄압에 눈과 귀를 닫고 있던 순간 전국의 몇몇 대학신문에서는 기사와 사진으로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근 1980년대 초반 전국 대학에서 발행된 대학신문에 '5.18' 관련 기사 등을 분석한 의미 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보도에 김선균기자입니다.

◀리포트▶
"5월은 우리에게 너무나 뼈아픈 기억들을 안겨주었던 달이다. 17일의 그날, 우리는 학교 밖에서 서성거려야 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18일의 그날, 광주사태라고 불리어지는 민족의 비극을 잊을 수 없다"

이글은 서울대에서 학생기자들이 발간하는 '대학신문'에 1981년 5월 실렸던 칼럼입니다.

항쟁 발생 1주년을 맞아 작성된 이 기사는 1980년 5·18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성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18일의 그날, 광주사태라고 불리어지는 민족의 비극‘이라는 말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은 학원자율화 이전 시기인 1981년부터 1983년까지 5·18을 전후로 전국 대학신문에 실린 기사와 칼럼, 시, 수필, 사진, 만평 등을 분석해 5·18에 대한 인식과 보도형태, 담론과 재현 양상이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에 주목하고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냈습니다.

박 실장이 최근 발표한 ‘대학신문에 나타난 '5.18'의 보도형태 연구'에 따르면  기성언론이 항쟁이후 오랫동안 5·18에 대한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1981년 5·18 1주기를 전후로 전국의 몇몇 대학신문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를 위해 박 실장은 '강대신문‘(강원대), '경북대신문', '경상대신문', '고대신문’(고려대), '대학신문‘(서울대), '부대신문’(부산대), '연세춘추‘(연세대), '전대신문'(전남대), '조대신문'(조선대), '중대신문'(중앙대) 등 전국 24개 대학에서 발행한 신문을 분석했습니다.

5·18 1주기였던 1981년 5월 일부 대학신문에서는 직·간접적으로 '광주'와 '오월'을 언급하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강원대에서 발행하는 '강대신문'은 5월 18일자 1면에 80년 5월 학원소요사태와 관련되어 계엄법 위반으로 청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강원대 학생들의 특별사면 소식을 전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5·18‘을 연상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또, 1981년 5월 25일자 1면에 실린 '성대신문‘(성균관대)에는 ’5·12교내 시위로 6명이 구속되고 9명의 학생이 제적 처리됐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해당 기사에는 왜 시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성균관대 사학과 70년사'에는 시위 주동자들이 '5월 광주사태를 기억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대 '대학신문'은 5·18 1주기를 앞둔 1981년 5월 11일자 칼럼을 통해 에둘러 '5.18'을 언급했던 다른 대학신문들과 달리 '18일의 그날, 광주사태라고 불리어지는 민족의 비극을 잊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1982년 5월 18일 발행된 '고대신문'(고려대)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라는 제목으로 5·18 2주기를 앞두고 열렸던 5월 14일 당시 시위 모습을 기사에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이처럼 5·18을 알리고 군부를 비판하는 대학생들의 노력은 기성 언론, 그 이상이었습니다.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대학생 기자들의 노력은 기사 이외에도 시와 수필, 사진, 이미지 등을 통해서도 진행됐습니다.

충북대신문 1981년 5월 12일자 1면 만평란과 8면 4컷 만화란은 백지로 발행됐고, 5월 25일 발행된 신문의 4면에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한 그림과 함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실렸습니다.

박 실장은 논문에서 학생기자들이 5·18 1주기를 전후로 만평과 만화를 통해 무언가를 전하고자 했지만 대학 측의 검열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또, 1981년 5월 7일자 '전대신문‘(전남대)은 '남으로만 흐르는 5월의 하늘'이라는 제목으로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였던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시민대회가 열렸던 도청 분수대에 포커스를 맞춘 한 장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고대신문'에 1982년 5월18일 실린 이미지(왼쪽)와 전대신문 1982년 5월18일자 4컷 만화(오른쪽) 

특히, 1982년 5월 18일 '고대신문‘(고려대) 1면에 실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이미지는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미지 외에도 1982년 5월 18일 발행된 '전대신문‘(전남대)은 주인공인 '용봉이'가 등장하는 4컷 만화를 통해 당시의 답답한 상황을 표현한 대목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80년대 초반 발행된 전국의 대학신문에서는 시와 수필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살벌했던 신군부의 눈을 피해 '광주'와 '오월'을 알렸습니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은 "1983년 12월 학원자율화 조치 이전 시기의 대학신문은 사전 검열을 받는 등 정권과 대학 당국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오월의 진실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의로운 학생기자들은 시위기사와 칼럼, 사과문, 사진기사, 만평·만화, 시, 수필 등을 통해 끊임없이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의 말입니다.
<인서트-광주의 진실을 알린 것은 광주만이 아니고 광주 외에 전국적으로 광주를 알리고자 했던 ‘전국의 5.18들’ 그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현재의 5·18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도하고자했던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5·18이 있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박 실장은 이어, "이번 연구는 1980년대 초반 제한적이고 파편적이지만 다양한 은유적 방식으로 끊임없이 5·18에 대한 담론과 재현을 시도했던 전국의 대학신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군부 집권초기 대학생들의 5·18에 대한 재현의 양상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봤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42년 전 민주화에 대한 광주의 뜨거운 열망이 전국의 대학가에 들불처럼 번지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대학생 기자들의 의로운 활동과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어 향후 5·18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cpbc뉴스 김선균입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22-04-12 11:42:43     최종수정일 : 2022-04-12 20: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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