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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춘범 엠마우스복지관 원장, ''천노엘 신부님은 친구이자 아버지, 동료 같으셨던 분''

김리원 | 2025/06/04 13:50

(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리원 기자 =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60여년 동안 장애인들의 아버지 역할을 해왔던 천노엘 신부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고인과 오랜 인연을 가진 이들이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엠마우스 보호작업장 이춘범 원장은 "자원봉사로 시작해 평생을 함께하게 됐다"며 지난 1989년부터 천 신부와 함께 봉사를 시작한 인연을 떠올렸습니다.
 
40년 동안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故 천노엘 신부<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이 원장은 "농성동본당 청년회 활동을 하다 신부님의 권유로 복지관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봉사를 하다 보니 복지를 알게 되고 신부님의 뜻에 감동해 하루, 이틀, 한달, 1년 이어져 계속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천노엘 신부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데 평생 열정을 바쳤습니다. 

이 원장은 "신부님은 단순히 시설을 만들지 않고 사업이 어떤 내용인지를 따지고 장애인들이 실제로 살아가야 할 공간과 환경에 맞춰 시설 위치와 구조를 고민했다"며 "작업장을 위치를 선정할 때도 일반 기업체처럼 공단에 마련했고 시설을 광주시 다섯개 자치구에 고르게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했던 故 천노엘 신부<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그러면서 이 원장은 "신부님은 늘 직원들에게 '큰소리 치지 말아라', '사랑해라'고 강조하셨다"며 "돌아가시기 전에도 '기다리세요', '우리 친구들을 사랑해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천노엘 신부는 장애인의 의견을 먼저 묻고 존중하는 자세로 엠마우스를 이끌어 왔다고 이 원장은 말했습니다. 
 
식사 메뉴조차 '무엇을 먹고 싶은지' 먼저 물었고 여행이나 행사도 장애인 친구들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이 원장은 "장애인들과 직원들에게는 신부님이시지만 동료이기도 하고 친구지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회상했습니다. 
 
생전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사업을 위해 매진했던 故 천노엘 신부.<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장애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사업 구상도 천노엘 신부의 인간적인 철학에서 비롯됐습니다. 

천 신부는 1981년부터 소규모 공동생활가정인 '그룹홈'을 시작으로 장애인 작업장과 교육센터를 설립하는 등 생애 전 주기에 맞춘 복지 체계를 하나씩 구축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공로를 드러내기보다는 "내 자식이, 내 가족이 한 일"이라며 국가가 수여하는 상도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이 원장은 "늘 '가족같이 살아야지'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며 "그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천 신부의 선종에 대해 그는 "마지막에는 호스피스병동에 가셨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이상으로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으로선 '잘 보내드렸다'는 생각이지만 아직 유해가 안 왔기 때문에 실감이 덜하다"고 심정을 밝혔습니다. 
 
평생을 장애인들과 함께 했던 故 천노엘 신부의 생전 모습<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이 원장은 "신부님은 살아 있는 거 빼고는 못 드시는 음식이 없을 만큼 한국에 익숙한 분이셨지만 언제나 우리 친구들을 위한 선택을 하셨다"며 "늘 똑같이, 가족처럼, 친구처럼 함께 하셨고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유머 있게 우리를 이끌어주신 분이셨다"고 회상했습니다.

끝으로 이 원장은 "신부님은 떠나셨지만 엠마우스의 정신은 이어질 것"이라며 "앞으로도 친구들 편에서, 친구들 위주의 복지를 실천하겠다"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한편, 국내에 첫 장애인 그룹홈을 설립하는 등 평생을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살아왔던 천노엘 신부는 지병이 악화돼 지난 1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저작권자(c)광주가톨릭평화방송,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작성일 : 2025-06-03 11:36:36     최종수정일 : 2025-06-04 1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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