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정평위 미얀마 난민 지원 활동 동행취재②]''예술로 상처 치료하고 연대하는 미얀마 활동가들''
김선균
| 2023/02/02 16:31
◀ANN▶
(태국 메솟=광주가톨릭평화방송) 김선균 기자·노진표 기자 =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지 2년을 맞았습니다.
43년 전 5·18의 아픔을 겪었던 광주는 여전히 미얀마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연대하고 있습니다.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30일부터 군부의 폭압을 피해 태국 국경지대로 피난 온 미얀마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두 번째 소식으로 미얀마와 태국 국경지대에서 예술로서 미얀마 난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연대하고 있는 미얀마 출신 활동가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현지에서 노진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미얀마와 태국이 서로 맞닿은 국경지대인 태국 메솟지역에는 미얀마 군부의 탄압을 피해서 나온 미얀마 난민 수만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 시위도중 목숨을 잃었거나 고문을 당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얀마 난민들을 위해 지난 1월초 문을 연 ‘조이하우스’는 음악과 요가, 댄스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조금이나마 치료를 도울수 있도록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문을 연지 불과 한달 남짓이지만 벌써부터 이곳을 찾은 이들만 350여명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만큼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조이하우스를 이끌고 있는 네이치윈(42)대표 역시 미얀마 소수민족 출신으로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 있던 고아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지난 2015년 태국 메솟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부모님은 미얀마에 머물고 있어 걱정이 앞서지만 그녀는 메솟에서 난민들에게 예술을 통해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태국 메솟지역 경찰이 조이하우스에 가던 학생은 물론, 교사들을 불시에 붙잡아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물리는 등 괴롭히고 있지만 이곳은 정치적인 공간이 아닌 ‘힐링센터’임을 강조하며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얀마 군부의 폭정이 종식될 때까지 메솟에 남아 같은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필요한 것을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조이하우스 네이치윈 대표의 말입니다.
<인서트-1,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 끝날 때까지 여기(메솟)에서 필요한 것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 미얀마 국민들이 최악이 됐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만큼 도와주세요. 미얀마를 잊지 않고 어디를 가던지 미얀마 사람은 미얀마 사람입니다. 어디에 가던지 계속 싸울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조이하우스 활동가들은 치료를 원하는 이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건물을 넓히고 싶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찾아오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트라우마센터’를 만드는 것이 소박한 목표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또 다른 활동가는 음악을 통해 미얀마를 알리는 예술가입니다.
올해 33살인 포산씨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지난 2021년 2월 10일 100여명이 거리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내용의 ‘피의 맹세’라는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도록 주도한 것을 계기로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미얀마 TV에 자주 출연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던 포산씨가 정부를 비판하는 곡을 올려 유튜브 조회수가 150만회를 넘어가자 경찰은 포산씨의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였습니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가족들이 국경을 넘어 태국 메솟에 온지 1년이 된 포산씨는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동료들과 함께 음악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포산씨는 “음악을 무기로 음악을 통해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고 싶다”며 “자신은 정치적이고 싶지도 않고, 정치도 모르지만 수치여사가 집권할 당시 많은 국민들은 잘 살았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잘못됐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비장함을 보였습니다.
바이올린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 포산씨는 “이 노래를 영화를 통해 가장 먼저 알게됐고 책으로도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알게 됐다”며 “이 노래를 듣고 마음 깊이 아팠고 당시 광주의 상황과 지금 미얀마 상황이 겹치면서 정말로 가슴 아팠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포산씨의 ‘임을 위한 행진곡’ BG MIX)
군부 쿠데타로 수많은 미얀마 국민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지만 43년 전 같은 아픔을 겪었던 광주를 비롯한 전 세계인들은 미얀마를 잊지않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늘 한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포산씨의 소박한 희망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